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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갈 곳 없는 장애아들, 사회적 소수집단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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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에서 지적장애3급 아들(5)를 키우는 한모씨는 최근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들이 입학한 유치원에서 더이상 아이를 돌볼 수 없다는 통보를 해왔기 때문이다. 유치원 원장은 "다른 아동학부모들이 폐쇠회로 CCTV를 확인하고서는 장애아동과 자신의 아이를 함께 교육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해와 어쩔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근처 유치원을 찾았지만 아이의 장애를 밝히자 교사들은 한결같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결국 한 씨는 직접 집에서 돌보게 되었다. (다음기사)

 

 

 

장애인 등에대한 특수교육법 제3조에 의하면 "특수교육 대상자에 대하여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및 고등학교 과정의 교육을 의무 교육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 장애 아동의 97.5%는 유치원을 다니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장애 아동의 유치원 이용률은 2008년 9.3%에서 2011년 2.5%로 6.8% 포인트 감소했다. 이 가운데 1~2급 중증 장애 아동은 7.3%에서 1.8%로, 3~6급 경증 장애 아동은 13.3%에서 4.1%로 줄었다.
 

 

 

필자는 전부터 간간히 장애아에대한 글을 써왔다. 복지국가,복지사회로 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중에 하나는 구성원들 즉 국민,우리들의 마음가짐이라는 기본중에 기본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국민 각자의 마음이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제도나 재정을 늘려 다양한 지원을 한다해도 그것은 뜨겁게 타올랐다 사그러드는 불꽃과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장애는 누구나가 가질 수 있다. 선천적으로 태어난 사람을 제외한 정상인 사람들에게 말이다. 나를 포함해서 너가 될 수있고 돈이 많거나 적거나,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사회적신분이 높거나 낮거나 누구를 막론하고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것이 모두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것인지 아니면 모르는것인지 망각하고 살고있다. 꼭 당해봐야 알까? 자신이 장애를 갖게된다면 그때는 이 사회를 원망하고 불신에 가득찬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인가?. 그전에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삶의 터전인 이 사회를 조금은 돌보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들은 사회 소수의 집단에 속한다. 소수의 집단이다보니 그들만의 소리를 내기에는 힘도없고 낸다한들 들어주는 이 많지않다. 우리사회는 그들을 더욱 곤란한 궁지로 내몰고있다. 내아이가 장애를 가지고있어서 정상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지도않고 장애가 전염되는 병도아닌데 왜 장애아를 멀리하라고 부모들은 강요하는 걸까.  왜 편견을 가지게 되는 걸까. 장애아와 어울리면 내 아이의 지적수준이 떨어질까봐?,아니면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면 전염병이라도 옮을까봐?. 그렇다면 과연 정상아이들의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정신적인 장애하고는 무었이 다른가? 오히려 그들과 어울리게된다면 상대방의 어려운점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좋은 습관과 인격이 형성될지는 생각지 못했는지 물어보고싶다.

 

 

선입견은 다양성을 가진 사물을 보는데 있어서 편협된 생각과 행동을 이끌어낸다. 선입견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네게 한다. 

 

 

알 도둑....

 

백악기에 살았던 공룔중에 "오비랍토르"라는 이름을 가진 공룡이 있었다. 이 공룡은 1924년,몽골의 고비사막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발견당시 공룡주변에는 알이 있었고, 당시 공룡학 학자는 이 공룡이 다른 공룡의 알을 훔치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공룡의 이름을 '알 도둑'이라는 의미의 "오비랍토르"로 지었다.

 

그런데 1993년, 또다시 알 더미 위에 오비랍토르의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이곳에서 발견된 오비랍토르의 화석안에는 오비랍토르의 태아가 들어있었다.

 

이 화석은 오비랍토르가 알 도둑이 아니라 자신의 알을 지키려다 죽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후 공룡학자들은 오비랍토르를 알 도둑이 아닌 모성이 강한 공룡으로 분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룡은 여전히 '알 도둑'이라는 의미가 담긴 이름으로 불리고있다.

 

100년가까이  불렸던 이름을 쉽게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만으로 상대방을 평가하다보면 오해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 번 각인된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기때문에 오해는 해소보다는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누구든 겉모습만으로 쉽게 평가하려는 태도는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벽이 될 수 있다. 사려 깊은 생각과 행동이 더 많이 필요한 요즘이다. 사랑과 이해의 마음으로 너그러이 서로를 바라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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