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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무관심과 단절된 대화' 그들을 죽음의 문턱을 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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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때가 되면 죽음에 이르기 마련이다. 미래에 의학이 발달함에따라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는 있겠지만 불로장생으로 까지 만들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누구에게는 모진 생명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한 순간에 연기처럼 그렇게 쉽게 날라가 버리는 생명이기도 하다. 뜻하지 않게 불의에 사고로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사람, 희귀병에 걸려 짧은 삶을 병치레를 하면서 살다가는 사람, 누군가를 돕기위해 물불을 가리지않고 타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는 사람, 술 때문에 죽은사람,빚 때문에 도망치듯 삶을 살다가 죽음에이른사람....이렇듯 죽음에는 무수히 많은 종류의 죽음이 있다.그 많은 종류의 죽음 중에서 자살은 타의에의한 것이아닌 자신 스스로의 생명의 끈을 끊어 버리는 행위이기에 조금은 다른 의미를 갖을것이라고 필자는 말 하고싶다.

 

 

시민운동가 전태일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미재단 보조로 사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노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몇 해뒤 근로기준법 개선에관한 모임을 만들면서 이 사회의 근로자들의 부당한 근로여건을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거대한 조직에 맏서서 싸우다 그는 결국 '근로기준법 화형식'과함께 분신자살을 하게된다.

 

 

그는 왜 자살을 하기에 이르렀을까? 누구나 알듯이 자기 자신이 자살을 함을로써 이 사회에 무엇인가를 알리기 위해 그는 자살을 한 것이다. 그에게 그 무엇인가는 곧 노동자의 근로기준법 개선이었고 그 뜻을 관철시키기위해 화영식장에서 자신의 몸을 날려 분신자살을 한 것이다. 당시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해놓은 노동자의 임금과 근로시간및 공휴일을 보장받아야 하는 직장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있는 것을 바로잡기위해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나 전태일의 편지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가 자살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에게 편지만 썼겠는가?.그렇지 않다. 수 많은 방법을 동원해서 고민하고 싸웠지만 결국 누구에게도 자신입장이나 심정이 받아들여지지않자 자살로써 표명한것이다.

 

 

 

 

요즘 어린학생들의 자살에대한 기사를 접할 때면 참으로 안타깝다. 부모님에게 잔소리를 들었다고 자살을 하고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다고 자살을 하고 학교성적이 좋지않아 자살을 하고 수능을 못봤다고 자살을 한다. 그들은 왜 자살의 문턱까지 자신을 이끌고 가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의 문을 넘어 버렸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런 자살관련 기사를 보면서 개중에는 '철이없어서 그런다, 고생을 하지 않아서 그런다, 배가 불러서 그런다'라고들 말한다. 과연 그들이 그러한 이유들 때문에 자신의 고민을 한 가득 가슴에 안고 자살을 했을까?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감내할 수 없는 고민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고민을 들어 줄 사람이필요했고 의지하고싶었고 상의하고 싶었을것이다. 만약 그들에게 바늘구멍만큼의 연결통로가 있었더라면 그들은 돌아오지 못 할 길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나약하기 그지없는 동물이기에 서로 의지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꼬리 문 초등학생 자살...5년새 60여 명

◆ 고민 1위 '공부'..'자살충동 커'- 공부가 가장 컸고 직업,외모,용돈이 뒤를 이었다.

◆ "대화와 관심부족" 개선시급.

 

 

과도한 사교육과 조기교육 열풍은 아이들을 스스로가 위축되게끔 만들고 사회와 단절시키는 지름길이다. 두 부류의 아이들에게 물었다.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과 일반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유치원에 가는 이유가 무엇이니?'. 영어유치원의 아이들 대답은 '공부하러 갑니다' 였고, 일반유치원의 아이들 대답은 '놀러갑니다'였다. 이 두 부류의 아이들의 성장한 훗날 어떤 모습인지는 각자의 생각에 맡겨두겠다. 한가지 질문을 해보겠다. 그렇다면 두 부류의 아이들중 어떤 부류의 아이들이 자살 할 확률이 더 높은가?. 어디까지나 확률적인 질문이고 예상되는 대답일 뿐이지만 우리아이들의 현실이다.

 

 

“한 달 동안이나 죽을 생각만 했다. 난 공부 때문에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우리 ○○는 공부 공부 공부 그런다”며 “죽으려고 했을 때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만 뒀는데, 소중한 사람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이번에는 내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

-지난 5월초 자살한 중학생의 유서 일부-

 

중학생의 어린나이에 고민하고 또 고민했는지가 절실히 보여진다. 주위사람들 즉 부모님,선생님,친구.... 여러사람들을 소중한 사람,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왜 그렇게 힘들었는데 도와달라는 말을 못 했을까? 주위사람들의 기대?,바램?...을 저버리지 못하고 가슴속에 묻어둔채 세상을 등진것이다. 이어진 유서내용에는 동생에게는 공부에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한다는 내용이 이어졌다. 조금더 여유있는 생활과 가족들의 관심이 있었다면 이러한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우리주변 어딘가에서느 들리지않게 죽음으로 말하고있을 것이다. 힘들다고....그런데 소리없는 아우성과 같은 울부짖음의 소리를 우리 어른들은 외면하고있다. 그려러니 하면서.. 혀를 차면서 말이다.그들의 고민의 크기가 크거나 작거나 혹은 큰일을 이루기위한 고민이거나 아주 작은 고민이거나,한 인간이 감내하기가 어렵다면 그것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 나이때는 다 그랬어'라고 치부하지말고 한번해서 않되면 두번 세번 손을 내밀어야 한다.

 

 

가정의 달이 이제 절반이 넘어가고있다. 내 가족,내 아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관심과 진심어린 대화를 나눠야 할 것이다. '우리 학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안그래요.'라고 단정짓지말고 항상 아이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어른들의 몫이자 의무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립고,잘 하고있다는 말 한마디가 그리웠을 것이다. 그들은 관심을 받지 못 했고 배려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표현하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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