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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제주초등학교 폭행부모의'죄송하다?',업지러진 물 주워담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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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교에서나 혹은 사회에서 선생님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학문적으로 덕망이 높은 사람이나 사회에서 존경받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일컬어 선생님이라고 말 합니다. 학교에서의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교과서의 내용 이외에도 인생선배로서 때로는 아버지나어머니의 마음으로 조언을 해주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대해서 길잡이 역활을 해줍니다. 자식 잘못 되기를 바라는 부모가 없듯이 제자가 잘못 되기를 바라는 스승 또한 없기때문입니다. 

 

저에게도  많은 은사님들중에서 특히 두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초등학교6학년때 남자 담임선생님이셨는데  그분은 아이들과의 격이없는 선생님이였습니다. 수업시간뿐아니라 체육시간에도 풀밭에서 운동장에서 학생들과 같이 땀을 흘리셨습니다. 선생님의 엄하고 무서움이 아닌 친구같은 선생님으로 저에게는 오래오래 기억이 남습니다. 또 한분은 중학교3학년때 담임선생님 입니다. 내 머리속에 그분의 이미지는 '인자함'입니다. 한번은 운동하다가 다리를 다쳐서 깁스를 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교내 소풍이 있었습니다. 소풍에 참석한 저를 끝까지 부축하면서 동행해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몸을 부축하고 다니시기에는 많이 힘드셨을텐데 라는 생각이듭니다. 당시 고등학교는 중학교에서 시험을 치고 입학하였는데 선생님은 저희반 아이들의 성적과 합격여부에 따라 재수할 학생들의 학원까지 손수 알아봐주셨습니다. 인자하고 자상하신 선생님으로 저뿐아니라 당시 저희반 아이들모두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과거 제가 학교다닐때만 하더라도 선생님은 '무서운,엄격하신,가까이 다가서기 힘든'이라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었습니다. 때로는 학생들에게 다가서고 싶어도,표현하고싶어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남학생들은 학교다닐때 이런저런 이유로 맞기도 많이 맞았습니다. 잘못했으니 맞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중에는 반항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래봐야 선생님을 똑바로 쳐다보는 정도입니다. 그랬다가는 한대 더 맞고 돌아올 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이구동성으로 학생도 인간이다. 체벌없는 학교를 만들자!. 학생인권을 존중해 달라!.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언론을 통해 그 이야기를 들었을때 세상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지 이제부터라도 회초리 교육이아닌 교사와학생들의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억압이아닌 자유로움 속에서 교육을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생각도 잠시 일부 지역에서는 학생인권보호를 악이용하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에 일가친척까지 대동하고 학교를 찾아가서 교사를 폭행 합니다. 학생들 앞에서 학부모의 폭행에 속수무책 당합니다. 만약 서로 싸움이라고 하는 경우에는 언론에 가해자로 비춰지는 것은 교사이기에 그렇습니다. 학생들의 교훈이 되고 존경이 되어야 할 교사가 무참히 짚밟힙니다. 많은 꿈과 사명을 가지고 교단에선 선생님은 이루 말 할 수없는 충격으로 휴직을하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습니다. 결국 교사라는 직업을 계속 할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게 됩니다.

 

(제주의 소리 뉴스이미지 출처)

얼마전 제주 초등학교 교사 폭행관련 학부모가 '죄송하다'며 찾아왔다고 합니다. 당시 부모는 담임교사와 1학년 부장교사 두명을 교실에서 폭행을 했습니다. 전치2주와10일의 상해를 가했습니다. 교사의 외상은 시간이 지나면 아물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 앞에서 추락한 교사의 교권과 그 장면을 지켜보던 30명의 어린 학생들이 받았을 충격과 상처는 무엇으로 치료를 해야 합니까? 죄송하다는 말로는 학생들의 머리속에 그려진 교사의 실추된 모습을 지우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선생님을 알아가고 가정에서는 선생님말씀 잘 들으라고 보낸 이 아이들은 선생님의 일그러진 이미지를  회복 할 수 있을까요?

 

가해자인 부모의 자식은 앞으로 학교생활이 힘들어 질 것입니다. 부모의 섣부른 판단과 행동때문에 자식의 학교생활에 큰 어려움을 줄 것입니다. 왕따문제로 어느 학교나 이슈가 되고있는 현재 그 학생이라고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너네 엄마아빠가 선생님을 때렸지?,'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다닐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부모의 행동을 보고자란 아이는 성장해서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당연하다는듯이 생각 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인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보고있습니다.

 

하나를 내어놓으면 상대방도 그에 응당한 것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세상이치가 그렇습니다. 무엇이건 일방적인 것은 없습니다. 학생인권보호아래 교칙을 바꾸고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었습니다. 교사 자신의 마음가짐도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시대가 변하면 나 자신도 변해야 하듯 말입니다. 그렇게 변해가는 모습을 당연하듯 바라보면 안됩니다. 학생과 부모 또한 교사의 인권과 교권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이제는 초등학교 교직에서 은퇴를 하시고 지역봉사단체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시는 70대중반의 어느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삼사십년전 초등학교 초임교사였던 선생님은 졸업을 앞둔 많은 학생들 앞에서 하셨던 말중에 '형편이 어려워도 전문직을 가지고 열심히 살다보면 꼭 성공 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학생들중에 그 말을 새겨들은 한 학생이 30여년이 지나서 가족을 모두 데리고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제자는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입장이라는 농담섞인 말을 건네면서 '저의 양부모님께서는 돌아가셨고 현재 동생들 대학공부까지 시켰습니다. 당시 선생님 말씀때문에 제가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고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학생은 선생님의 그 말을 뼈속깊이 새겨들었고 악착같이 전문기술을 배우고 열심히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 제자가 돌아가고나서 선생님은 큰 보람속에서 또다른 미안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선생님으로서 제자가 성공한 모습에대한 보람과 그 당시 조금더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해준것에대한 미안함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학생들이 더 많고 제자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더 해주시는 선생님이 많기에 따뜻한 봄이 언 땅과 차가운 눈을 녹이듯 그렇게 변해가지 않을까 생각하고 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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