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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아빠의 공상

무디어진 칼 만큼이나 부드러워지신 부산싸나이..

 

 

 

흔히 무뚝뚝함에 대명사로 경상도 남자를 말을하곤 한다. 서울에서 주욱 살고있는 나한테 그런 표현이 말이없고,잔 정이없고,자기 할 말만 하는 그정도의 느낌이다. 태어나서 저 아래지방이라고는 여행삼아 제주도이외에는 딱히 발길이 닿지않았다. 연고지가 없었던 터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살아오면서 딱히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런내가 결혼과 동시에 졸지에 부산을 자주가게 만들었다. 처음 인사를 들이러 가기부터 무엇하나 낯설었던 부산. 게다가 경상도남자의 선입견은 나를 더욱 적응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뭐 다른세상사람도 아니고  좁은 땅덩어리에서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어' 하고 인사를 드리러 간 나는 무엇하나 쉽지않았다. 예상대로 무뚝뚝함에 대명사가 괜히 있는 말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말이나 잘 알아들으면 다행일 정도였던 나는 부산 싸나이 장인어른과의 관계가 앞으로 '얼마나 더 어색하고 힘들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인어른과 사위가 아무리 좋아봤자 누구나 어색하기는 매 한가지이겠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지금의 상황과 앞으로의 관계개선에 심한 먹구름과 태풍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사위불편 할 까봐 이것저것 생각해주시는것도 왜 그렇게 불편만 했던지..지금 생각해보면 웃음만 나온다.

 

 

그래도 사람사는게 비슷한다고했던가... 나이들면  비슷해진다고했던가... 그렇게 어려웠던 장인어른도 이제는 환갑이 훌쩍 넘으셔서그런지 적어도 내가 그간 보아왔던 모습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지신 것도 같다. 아니면 내가 적응을 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IMF가 모두에게 힘들었듯이 장인어른도 힘든 시기를 보내셨다고 한다. 하시던 건설업이 부도에 부도가 터졌고 달력에는 무슨 날도 아닌데 이틀이 멀다하고 날짜에 빨갛게 동그라미가 쳐져있었는데 다름아닌 사채업에 돈 대는 날짜였다고 아내는 말을 한다. 한 때 잘 나갈때는 건물 몇채에 아들딸앞으로 집도 가지고 계셨지만 모두 한줌에 재처럼 어디론가 다 없어졌다. 다행이 이제는 하시던 업을 이어가고 살고있는 집이 전부이시다. 가끔 소주한잔 하시면 당시이야기를 나한테 하시곤 하시는데 참으로 힘들었던것이 역력히 보이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가족이없었으면 무슨생각을 했을지 자신도 모르겠다곤 하시면서 자신의 아내.딸.아들이 없었으면 당시를 버티는것은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신다. 당시 아내는 아르바이트를해서 모아두었던 통장을 내밀었다고도 하는데 그것을 받아야만 했던 부모마음은 오죽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아들,딸 시집장가 모두 보내도 두분이 사신느데 솔직히 웃을일이 없겠다 싶기도하다. 자식들이 가까이 살아서 가끔 보는것도 아니기에 더욱 그러실 것이다. 얼마전 장모님이 다녀가신이후로 손녀자랑을 얼마나 하셨는지 급기야 장인어른이 진행중이던 공사를 접어두시고 올라오셨다.

'눈앞에서 아른아른 거려서 도져히 안되겠다' 이러시면서 올라 오셨다. 그렇게 무뚝뚝하고 자상함이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고 표현은 어디다 두고사시는지도 모를 아버님이 한걸음에 달려오신것이다. 외손녀가 보고싶어서 올라오신것도 그렇지만 오시면서 이것저것 가져오셨다. 쌀,나물,밑반찬..게다가 소주두병까지 챙겨오셨다.  '쌀은 무엇하러 가져오셨어요?'라는 물음에 '내 먹을건 내가 가져와야지'라고 입이 이만큼 나오시게 말씀을 하셨지만 왜 모르겠는가..시골서 농사지은 쌀이라며 가실때는 그렇게 놔두고 가실것을.. 

 

 

하필 나도그렇도 아내도 요즘 회사가 바빠서 주말인지 평일인지도 모르게 일 할때 올라셨다. 하루쯤 휴가내서 어디 좋은데 모시고 갈 만할때 오셨으면 좋았을것을 말이다. 몇번을 미리 말씀을 드렸지만 '상관없다..너네 보러가는거 아이다.'라며 한사코 올라오셨다. 그렇게도 외손녀와 보내는 시간이 장인어른은 낙이고 즐거움일까?..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 아버님의 마음을..

 

손잡고 공원에를 매일 다니시고 낯설어 할 만도 한데도 아이는 할아버지를 곧 잘 따랐다. 책도읽어주고 장난감으로 놀아도 주시고 공놀이도 해주시고 잠시 쉬지도 못하게 아이는 할아버지를 괴롭혔다. 그놈에 사투리때문에 아이는 평소에 잘 알아듣던 말도 계속 묵묵부답이다. 한 번은 '위로 해야지'라는 말을 '울로해야지'라고 해서 아이는 눈만 끔벅끔벅거리고 쳐다만봤으니 이것또한 예전에 내가 겪었던 것을 아이도 겪고있나 싶어서 한참을 웃었다. 장인어른과 아이가 그렇게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그런생각이 문득 들었다. 차라리 않보고 멀리있을때보다 '나중에 가시면 더 보고싶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이를 돌보시다 하루는 과일을 손수 깎아주시겠다고 하셨는지 우리가 퇴근해 들어왔더니 하시는 말씀이 '이게 칼이가 이거로는 두부도 안갈리겠다'하시는게 아닌가?. 평소에는 주로 아내가 칼을 쓰기에 나는 날이서있는지 누어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그려러니하고 쓰고있었던 것이다.우리부부가 무딘건지 아니면 게을러서 그런건지 아버님이 한소리 하신다. 그길로 나는 시장에가서 칼가는 숫돌을 구입해왔고 장인어른께서는 집에있는 칼 모두 꺼내서 갈아주셨다.

 

 

 

 

늙어버리신 장인어른의 칼 가는 옆모습을 보고있으니 우리가 쓰고있던 무디어진 칼 만큼이나 되어보이신다. 시집간 딸 집에 오시면서  먹으라고 시골서 바리바리싸오신 거며 바쁜와중에도 외손녀 보고싶어 한걸음에 달려 오신거며 올라오셔서 딸래미 살림살이 손봐주시고 가시는거며 이제는 어디에서든 부산 싸나이라는 무뚝뚝함은 찾아볼 수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장인어른의 칼가는 옆모습을 무심코 찍은 사진에서 그렇게 나에게 이런저런 생각이 들게 했다. 아마도 오늘같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은 공사 진행이 안되실 것이기에 외손녀 생각이 더 떠오를 것이다.  "허~참..고녀석 말을 우째 그리 잘하노, 얄궂데이~"라면서...